뉴질랜드의 원주민 마오리족(Māori)은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들에게 땅(whenua), 바다(moana), 산(maunga)은 단순한 자원이 아니라 조상과 영혼이 깃든 존재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가 환경 위기와 기후 변화에 직면한 가운데, 마오리족의 전통 철학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합니다.
이 글에서는 마오리족의 환 경관, 신화적 세계관, 지속 가능한 삶의 지혜를 중심으로 그들의 환경 철학을 깊이 탐구합니다.

자연은 ‘친족(whanaunga)’이다 — 마오리족의 세계관
마오리 문화의 핵심은 ‘모두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All is connected)’는 개념입니다.
인간, 동물, 식물, 바위, 바다, 바람까지 모든 존재는 하나의 생명적 네트워크 속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자연을 정복하거나 소유하는 대상이 아닌, 가족과 같은 존재로 여깁니다.
마오리족은 자신들을 “땅의 아이들(Tamariki o te whenua)”이라 부르며,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혈연적 유대로 인식합니다.
예를 들어, 강은 ‘어머니의 젖줄’, 산은 ‘조상의 어깨’, 숲은 ‘생명의 보호막’으로 표현됩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Kaitiakitanga(카이티아키탕가)’라는 환경 윤리로 이어집니다.
카이티아키탕가(Kaitiakitanga) — 수호자로서의 인간
카이티아키탕가란 “자연의 수호자이자 관리자로서의 책임”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해 지켜야 할 관리인(guardian)으로 간주됩니다.
이 철학은 오늘날 뉴질랜드의 환경 법률과 보존 정책에도 깊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실제로 2017년, 마오리족의 신성한 강 와강누이강(Whanganui River)은 세계 최초로 법적 인격체로 인정받았습니다.
이는 “강은 인간이 아니다. 하지만 그도 권리를 가진 존재다.”라는 마오리의 사상을 법적으로 실현한 사례입니다.
정부와 마오리 공동체는 함께 강의 ‘권리’를 보호하며, 강의 건강이 곧 인간의 건강이라는 믿음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신화 속 자연의 지혜 — ‘판가 마투아(Papatuanuku)’와 ‘랑기누이(Ranginui)’
마오리족의 창조 신화에는 대지의 어머니 판가 마투아(Papatuanuku)와 하늘의 아버지 랑기누이(Ranginui)가 등장합니다.
두 신은 처음엔 서로를 꼭 껴안고 있었지만, 그 사이엔 어둠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자식 신들이 세상을 밝히기 위해 부모를 떼어놓자, 하늘은 눈물을 흘려 비를 내리고, 대지는 생명을 품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신화는 자연의 순환, 균형, 그리고 희생의 철학을 상징합니다.
마오리족은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배우며, 균형(balance)과 존중(respect)을 삶의 기본 원칙으로 삼습니다. 현대 환경 운동에서 자주 언급되는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의 근원적 형태라 할 수 있습니다.
마오리족의 전통 생태 지식(Mātauranga Māori)
‘마타우랑가 마오리(Mātauranga Māori)’는 수천 년에 걸친 자연 관찰과 경험을 통해 축적된 전통 생태 지식 체계입니다.
계절 변화, 별자리, 바람의 방향, 조류 이동 등 자연의 패턴을 세밀히 관찰하며, 이를 생활의 지침으로 삼았습니다.
예를 들어, 별자리 ‘마타리키(Matariki, 플레이아데스)’의 출현은 새해의 시작과 농경의 시기를 알리는 신호로 사용되었습니다.
마오리의 어부들은 조류의 색과 해류의 움직임을 읽고 어획량을 조절하며, 숲의 수렵은 “필요 이상을 취하지 않는다”는 윤리에 따라 제한했습니다.
이러한 삶의 방식은 오늘날에도 지속가능한 개발(SDGs)의 철학과 일맥상통합니다.
현대 사회에서 되살아나는 마오리 환경 철학
뉴질랜드 정부는 최근 ‘Te Ao Māori(마오리의 세계관)’을 공공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 강 보존, 기후변화 대응 정책에 마오리 공동체가 직접 참여하며, 전통 지식이 과학적 데이터와 함께 정책 결정의 근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오리 환경 모니터링 시스템(Mātauranga-based monitoring)은 강의 맑기, 숲의 소리, 바람의 냄새 같은 감각적 요소를 ‘생태 건강 지표’로 삼아, 인간 중심의 개발 논리에 균형을 부여합니다.
이는 단순한 환경 보호를 넘어, 자연과 인간의 조화로운 관계 회복을 목표로 합니다.
마오리의 환경 철학은 현대 사회가 잃어버린 존중과 책임의 감각을 되찾는 데 큰 영감을 줍니다.
결론
마오리족의 환경 철학은 “지구는 우리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지구의 일부다.”라는 믿음에서 출발합니다.
카이티아키탕가(Kaitiakitanga)는 단순한 윤리가 아니라, 공존의 철학이며, 인간과 자연이 서로 돌보는 관계의 본질을 일깨워 줍니다.
우리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말하려면, 마오리처럼 자연을 보호의 대상이 아닌 가족으로 바라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제는 기술이 아닌 지혜, 개발이 아닌 조화의 시대입니다.
마오리족이 보여주는 ‘환경과의 관계성’은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반과 같습니다.